전국주교역사

전국주교 역사

제17회 정기총회

이 땅에 1885년 복음이 들어와서 전체 인구의 25% 이상이 복음화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님이 이끄신 교회주일학교 사역의 공헌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초기 한국교회의 교육 주체중의 하나인 주일학교는 1905년 한국 선교연합 공의회(Federal Council of Missions) 내에 주일학교 위원회가 창설된 것을 기원으로 하여 그 후인 1908년 4월 R. L. Brown과 H. M. Hamill이 다시 세계주일학교 연합회를 대표하여 내한하여 첫째로는, 한국주일학교협의회의 실행위원회를 결성하였으나, 둘째로는, 세계 주일학교 협의회의 도움과 협력을 요구하는 결의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1913년 세계주일학교 협회의 실행부 회장인 H. J. Heinz가 내한하여 경무대(현 청와대) 앞마당에서 서울시내 주일학교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약 14,200명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한국교회의 역사와 때를 같이하는 주일학교의 교육은 처음부터 장년부 주일학교에 중점을 두었다. 지교회에서는 주일 예배 전에 성경공부를 하기 위하여 모였는데 여기에는 교우들뿐 아니라 관심 있는 불신자와 불신가정의 아이들이 참석하였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예배 참석 교인 수 보다 주일학교 참석자가 더 많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일학교는 1910년대에는 확장 주일학교(Extension Sunday School)를 통하여 더 크게 부흥하였다.
 
확장주일학교라는 기관은 비기독교인의 자녀를 전도하는데 초점을 두고서, 성경뿐 아니라 한글의 읽기, 쓰기, 그리고 때로는 초급 한문도 가르쳤으며, 시설이 여유에 따라 기술과 음악도 가르쳤는데 이러한 교육내용이 부모들로부터 호감을 사게 되어 전도에도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이렇게 선교사역이 확대되자, 주일학교 조직, 교사교육, 교재개발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었다. 이 무렵 이미 감리교와 북장로교에서는 주일학교 전담 사역자를 두게 되었다. 이 때 주일학교 학원(Sunday School Institutes)은 교회교육의 핵심기관인 성경학원, 성경연구반과 같은 의도에서 설립된 것으로 사역자 양성을 위한 기관이었다. 
주일학교의 교재는 연합주일학교 위원회에서 "주일학교 공부"를 전국을 대상으로 준비하여서 기독교 문서회(Christian Literature Society)가 발행하였고, 주일학교의 효과를 점검하기 위하여 "표준 점수표"(standard Scorecard)를 만들었으며, 또 교사를 위한 잡지를 발행하였고, 성경이야기, 시상카드, 생일카드 등의 자료도 제공되었다. 공과책도 교사 외에는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이 가지고 공부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그대로 공부하였으나 어려움은 없었다. 각 교회에서는 또한 교사직을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교사교육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주간의 어느 시간을 정하여 담임 목사나 전도사의 지도아래 다음주의 공과공부 시간을 가졌다.

제18회 정기총회

주일학교의 교재는 연합주일학교 위원회에서 "주일학교 공부"를 전국을 대상으로 준비하여서 기독교 문서회(Christian Literature Society)가 발행하였고, 주일학교의 효과를 점검하기 위하여 "표준 점수표"(standard Scorecard)를 만들었으며, 또 교사를 위한 잡지를 발행하였고, 성경이야기, 시상카드, 생일카드 등의 자료도 제공되었다. 공과책도 교사 외에는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이 가지고 공부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그대로 공부하였으나 어려움은 없었다. 각 교회에서는 또한 교사직을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교사교육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주간의 어느 시간을 정하여 담임 목사나 전도사의 지도아래 다음주의 공과공부 시간을 가졌다.
초대 교회의 주일학교의 교육방법으로는 예배시간 외에 모여서 성경을 배웠으며 교육이 예배의 설교보다도 더 강조되었다. 

한국교회는 자신들의 예배당은 스스로 지었지만 불과 몇 교회 외에는 교육관을 짓지 못한 관계로 장소가 협소하고 모자랐기 때문에 주일학교가 다 모이지 못하고 어린이 주일학교로부터 남자 장년 주일학교, 여자 장년 주일학교가 오전 시간대별로 모였다.
1922년 11월 주일학교 위원회가 조선 주일학교연합회로 반전하게 된 것은 한국교회 초기 교회교육의 주 대상이던 장년에서 어린이에게로 옮겨짐을 의미한다. 이 시대의 주일학교 특징 가운데 먼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부별(部別) 교재 출판이다.
한국교회의 주일학교에서는 1927년부터 부별 계단공과를 출판하여 사용하였다. 1933년부터는 계단공과의 본문과 요절을 미국에서 가져다가 우리 손으로 작성하여 출판하였는데 이 때의 공과는 철저히 성경 중심적이었으며, 또한 흥미 있게 구성하였다. 다음의 특징으로는 동화와 찬양의 강조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부활절, 감사절, 성탄절 등과 같은 특별 절기행사의 강조도 말할 수 있으며 아울러 주일학교에서 시상제도를 실시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주일학교 교사양성 공과는 1924년 출판되었는데 이 과정의 교과목은 성경 12시간, 심리학 12시간, 교수법 12시간, 조직법 12시간, 특별과 12시간, 인도법 12시간으로 구성되었으며, 총계 72시간을 전부 공부한 후 시험에 합격하면 주선주일학교 교사의 자격을 주고 이 과정 다음에 또 72시간을 더 공부한 사람에게는 만국 주일학교 교사의 자격과 졸업장을 주었다. 
1925년 11월 이후 장년부 교사용 참고서는 조선 주일학교 연합회에서 발행하는 "주일학교 잡지"의 부록으로 게재하였으나 1929년 1월부터는 조선주일학교 연합회에서 발행하는 "주일학교 신보"에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교사용 참고서가 게재되었으며, 1931년에는 장년과 유년을 위한 만국통일공과를 발행하고 이와 함께 교사용 참고서와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용 만국통일공과를 발행하였다.
1938년 6월 21일 임시 총회를 마지막으로 조선 주일학교 연합회가 해체됨과 1938년 8월 "국가 총동원법"에 따라 총독부 도서과에서 도서출판의 전면적인 통제를 함으로써 공과 간행사업도 약화되었다.
1912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조직된 후 약 40년이 흘러오면서 전국적으로 주일학교대회가 1, 2차 있었고, 전국적으로 교회가 3천여 교회로 성장과 각 노회별로 주일학교연합회가 조직되기 시작(1954년 제 39회 총회보고서) 됨으로 전국주일학교연합회 조직이 필요하다는 당위성 때문에 1955년 창립총회를 열게 되었다.
1955년 9월 16일 서울 영락교회 당에서 회집된 창립총회에 18개 노회(방청 2개 노회 포함) 대표 53명이 참석했고, 총회교육부 임원진들이 임시의장과 서기를 맡아 회의를 진행했다.
당시의 임원진을 보면 회장에 고영찬(경기), 부회장에 남석봉(경북), 김봉서(제주), 홍성은(강원) 총무엔 김광호(황해), 서기 정석은(경기), 부서기 김반석(목포), 회계 나기환(경기), 부회계 이선장(순천) 이었다. 

제49회 정기총회

전국주일학교연합회는 창립부터 의욕적인 사업과 행사를 실시해 왔다. 중요 사업으로는 교사강습회, 주일학교 회보발간, 찬송(음악), 동화, 교사웅변대회 등이 있었으며, 교사뱃지 제작 보급, 하기학교 지도자 강습회 후원과 개최에 역점을 둠과 전국주일학교 대회(제1회 1956년 4월 3~8, 대구 계성학교)를 개최하여 교사들의 질적 향상과 단합, 친교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전국동화대회는 제1회 전국대회에서 시작으로 몇 년 이어져오다가 전국주교 30년사 발간 전에 중단되었고, 전국주일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던 전국교사 웅변대회 또한 제 1회 전국대회에서 시작 되었으나 중단되었다.제49회 정기총회를 마치고 찬송가 경연대회인 음악 콩클대회도 1956년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나 대회를 치루지 못하다가 지금은 전국찬양경연대회로 진행되고 있으며, 1957년부터 실시되어온 모범어린이 및 모범어머니 표창은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제36회기부터 모범어린이 시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64년부터 실시된 20년이상 근속교사 표창제도는 전국주일학교 연합회가 가장 무게 있고 농도 짙게 실시하는 표창으로 제41회기부터는 30년 근속 교사도 표창하고 있다. 

1972년부터 실시한 전국성경고사대회를 비롯한 전국찬양경연대회와 전국율동대회는 동시 5~6,000여명이 모이는 대회로 성장한 회기중 제일 큰 행사로 주일학교 학생들이 성경을 가까이하고 성경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하게 함과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하여 마련되었다. 

제1회 정기총회 회의록

일 시 : 1955년 9월 16일 오후 2시 

장 소 :  영락교회 베다니관 

총 대 : 
경북노회(남석봉 우성기 엄재권 권종문) 경남노회(이경화 신순복)
목포노회(김반석 김채현 정시환 이병익) 강원노회(전기영 홍성은 임인형 김동성)
순천노회(이선장 김선중 신인현 김희철) 제주노회(김봉서 정찬준)
경기노회(이영희 고찬영 나기환 정석은) 경중노회(천성훈 설인철)
군산노회(송문일 나반석 김정관 최희국) 대전노회(조봉일)
충남노회(최진모 박종학) 김제노회(이재현 박학림 양준섭 최출용)
경서노회(우주섭 장창덕 배수한 황병혁) 한남노회(박도삼 윤익범)
충북노회(연구희 임도준) 전북노회(오기영 성갑식 박세모)
평양노회(박창육 최창덕 임인식 김상조) 강원노회(곽경두) 

임시의장 및 서기 : 의장 : 안광국      서기 : 정석은 

회칙통과

회칙초안 일부 수정하고 결의채택 

임원선정

총회교육부 총무 안광국 목사와 각 노회 총대 중에서 선출한 전형위원 12명에 의하여 각 임원 및 중앙위원을 다음과 같이 선정함.

회 장 : 고찬영(경기)
부 회 장 : 남석봉(경북) 김봉서(제주) 홍성은(강원)
총 무 : 김관호(황중)
서 기 : 정석은(경기)
부 서 기 : 김반석(목포)
회 계 : 나기환(경기)
부 회 계 : 이선장(순천)
중앙위원 : 신순복(경남) 황병혁(경서) 조봉일(대전) 송준일(군산) 최기모(충남) 
천성훈(경중) 우성기(경북) 이재현(김제)
고 문 : 한경직 목사, 안광국 목사, 박병훈 목사
 
토의사항
사업계획 및 예산편성은 임원회에 일임함. 
    
회장 고찬영
서기 정석은 

   60대 회장
  이재영장로